신용회복경험담

2025.04.23 11:51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이제는 믿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4.23 11:51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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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했던 삶의 균열 전

저는 올해로 35살이 된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글로벌 IT 기업에서 마케팅 매니저로 근무하며, 안정적인 수입과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와는 결혼 6년 차였고,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도 하나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함께 공원에 나가 뛰어놀고, 평일에는 늦은 퇴근 후에도 아이 얼굴을 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했죠.

모든 게 그럭저럭 괜찮았습니다. 물론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가족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내와의 갈등이 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가 바빠지면서 대화는 줄어들고, 오해와 상처만 쌓여갔죠. 결국엔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전개: 삶이 무너지기 시작한 순간

이혼은 감정적인 상처만 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이 훨씬 더 무거웠어요. 재산 분할, 위자료, 양육비 문제까지 얽히다 보니 제가 짊어지게 된 빚은 어느새 7,800만 원에 달했습니다. 은행 두 곳에서 대출을 받았고, 카드 대금도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갚아보려고 아끼고 또 아꼈어요. 회사 일도 더 열심히 했고, 승진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자가 쌓이기 시작하니, 원금은 그대로인데 부담만 커져갔죠.

3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매달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급여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철렁했습니다. 제 월급에서 나가는 고정비용이 절반이 넘는 상황이 지속되자, 몸도 마음도 지쳐갔습니다.



 

3. 위기: 개인회생이라는 단어가 현실이 되기까지

결정적인 계기는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날이었어요. 토요일에 키즈카페 가기로 약속했는데, 카드 한도 초과로 입장료도 결제하지 못했던 겁니다. 그날 아이가 말없이 제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러다 진짜 아무것도 남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개인회생에 대해 진지하게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사실 처음엔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내가 이 정도도 못 견디나?” 싶었죠. 주위엔 말도 못 했습니다. 그래도 결국엔, 회사 선배 한 분이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게 인생 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방법일 수도 있어"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내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4. 해결: 길고 무거웠지만 분명히 나아가던 과정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는 약 5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준비할 서류도 많았고, 심적으로도 쉽지 않았어요. 특히 법원 출석 날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법정 앞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하는 묘한 위로도 받았습니다.

법원에서 인가가 떨어졌고, 현재는 월 48만 원씩 3년 동안 변제하는 계획으로 진행 중입니다. 처음 몇 달은 계획대로 생활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패턴이 생겨서 익숙해졌습니다. 외식은 줄였고, 지출은 철저히 기록합니다. 무엇보다도, 돈 걱정 때문에 매일이 불안하던 과거보다는 훨씬 나아졌어요.



 

5. 결말: 다시 일상으로, 그리고 그 너머로

개인회생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직 갈 길은 남았지만, 이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마음가짐이에요. 예전엔 매달 불어나는 채무에 끌려다녔다면, 지금은 내가 내 삶을 조율하고 있다는 자존감이 생겼습니다.

아이와의 시간도 훨씬 소중해졌습니다. 더 이상 겉으로 보이는 체면보다, 지금 이 순간 아이와 함께 웃을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값진지 알게 됐습니다.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개인회생은 끝이 아니라,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장치입니다. 자책하지 마시고, 혼자 끙끙 앓기보단 한 발 내딛어 보세요. 분명,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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